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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직장생활

때로는 그냥 두는 것이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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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인이다.
월급쟁이.
한 푼어치의 자존심 따위는 내려놓은 지 오래며 오직 두 딸을 생각하여 오늘도 출근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 한지 올해로 12년 차이다.

나는 전주에 있는 공공기관에 IT인프라 운영 업무를 위해 파견되어 있다. IT outsourcing, 줄여서 ITO라고 한다. 소속된 회사는 의례 생각하는 인력 파견 수준의 작은 회 사은 아니고 국내 메이저 은행의 계열사이다. ITO를 위해 임시로 뽑힌 계약직원도 아닌 무려 정직원이다. 나름 글로벌 IT 회사인 O사에서 여기로 온 것도 순전히 이 때문이다. 은행 계열사이지만 노조가 있고 이 노조 덕분에 급여체계가 은행과 동일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꽃향기에 벌들이 끌리듯이 높은 연봉에 끌리지 않은 직장인이 몇이나 있으랴? 나도 돈을 보고 이곳에 온지 벌써 만으로 2년이 넘었고 이제 3년 차에 접어든다. 첫해는 서로 눈치 보고 고매하신 고갱님들 눈치 보느라 어영부영 지나가고 두 번째 해는 고도화된 시스템을 오픈하느라 훌쩍 가버렸다. 2년 간은 나쁘지 안 있다. 얼마 전부터 함께 파견 나온 5명의 팀원들이 나를 빼고 2대 2로 냉전이 진행 중이다.

어차피 모두 돈벌려고 이 바닥에 뛰어들었으므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저냥 잘 지내면 좋으련만 S, L과장과 K, A대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해도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한다. 리더 격인 S과장도 웬만하면 사내 메신저의 쪽지 보내기 기능으로 업무지시를 한다. 덤덤히 말로 쓰고 있고 글로만 보면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네 명과 모두 대화를 하고 극단의 치우치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양쪽에 끼어 무척 힘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들이 이렇게 지낸건 아니었다. 같이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잘 어울리던 때도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의 마음속에 앙금이 쌓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들이 틀어진 계기와 과정은 별도 글로 정리할 예정이다. 어떻게든 화해시켜보고 싶었다. 나름 다른 팀 선배들에게 이 상황을 공유하고 넌지시 도움도 청하고 서울에 근무하는 팀장에게 전화로 상황이 심각함을 알렸지만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밤잠을 설쳐가며 해결책을 고민했지만 지금은 고민하지 않는다. 왜냐고? 이들 사이를 고민하지 않는게 나에게 정답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K,A대리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동정심도 있었고, S, L과장을 설득해보려는 의욕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도그마 같은 것이 존재했다. 세상 사는 사람은 모두 같을 수 없고 나와 같을 수 없다. 나처럼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느 정도 감내하며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은면 싫은 대로 일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들에게 화해하라고 하는 건 내 생각을 그들에게 주입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 찾아왔다면 그래서 밤잠설치고 고민이 된다면 상황에 매몰되지 말고 한 발짝 물러서 관망하는 자세로 그냥 두는 건 어떨까 한다.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재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싸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사자들이다. 이미 성인이 된 자들이 그걸 모른다면 한심한 것이고 알면서도 싸운다면 쓴맛을 보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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